님 안녕하세요. 심술 난 장마가 전국을 무섭게 덮쳤던 이번 주 님은 안녕하신가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피해 소식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아끼는 공간에서 온전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저희에게도 한 발짝 나가기 어려웠던 한 주였습니다.
공간의 향으로 그곳에 대한 기억이 진하게 남은 경험 있으신가요?
지독한 날씨 때문에 온종일 회색빛에 질려있을 내향인 여러분을 위해, 이번에는 눈의 기억보다는 다채로운 코의 기억으로 장소를 더듬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전달드리는 향이
님의 코에도 닿기를 바라며
내세구 드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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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이 비치는 다리 , 자연 월영교
[2] 따뜻한 인도 히피의 공간 , 카페 짜이다방
[3] 마음속 한켠의 지하 아지트 같은 공간, LP바 세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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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의 초입에 가까워질수록
월영교 특유의 가라앉은 공기가 코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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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물안개가 자욱한 월영교를 보러 여러 번 안동을 방문했다. 처음 갔을 때의 기억 덕분인지, 이곳에 오면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짙게 피어오른다. 다리의 초입에 가까워질수록 월영교 특유의 가라앉은 공기가 코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월영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책(木柵) 인도교로, 한국적 전통미가 돋보이는 나무 상판에 현대적인 다리가 합쳐진 독특한 모양이다. 가운데에는 팔각정 형태의 월연정이 있다. 월연정에 앉아 눈앞에 흐르는 물길을 보고 있으면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시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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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 살았던 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주인공 ‘이응태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원이 엄마의 편지)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온갖 다리, 절벽, 자물쇠 등을 따라다니는 진부한 클리셰의 속설이지만 그 뻔한 바람이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월영교에 갔던 날은 공교롭게도 흐리고 어두운 날이 많았다.빗물에 젖은 축축한 나무 냄새가 나는 다리를 건너다보면 다리 곳곳에 이슬이 맺힌 거미줄이 보인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에게 썩 유쾌한 장면은 아니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열심히 지어놓은 거미집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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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月映桥)는 한자 그대로 “달이 비치는 다리”라는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달이 떠오르는 밤 풍경이 유명하다. 매년 7, 8월 사이 일정 기간 월영야행 축제가 열린다. 등불이 달린 전통 등간이 나란히 세워진 다리를 걷고 있으면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에 들어온 듯하다. (현대화가 많이 된 우리나라의 풍경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풍경조차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쉽다)
다리를 건너면 청사초롱이 어둠이 내려앉은 산책로를 밝히고 있다. 빛에 의존해 정신없이 걷다 보면 산에서 흘러오는 흙냄새와 물기를 가득 품은 안개의 냄새가 어우러져 자칫 덥고 습할 수 있었던 그해 여름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다. 한 폭의 동양화 속에 들어갔다 온 듯한 월영교 산책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몽환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냄새는 사진처럼 그 순간을 영원히 저장할 수 없이, 우연히 스쳐 지나간 냄새에 반응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희미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코의 기억을 더듬어 공간을 기록하는 것도 하나의 추억을 회상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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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 INFO
월영교
위치 경북 안동시 상아동 569
입장료/공영주차장 무료
물안개 피는 시간 해 질 무렵
관람 TIP '원이 엄마’ 이야기가 담긴 안내문을 읽고 다리를 건너면 월영교가 더욱 멋있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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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흙냄새와 가게 곳곳에 있는 햇빛에 말린 천 냄새에
진정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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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내 고향과 생활의 달인에 나올 것 같은 닭볶음탕 집 옆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 높이의 담벼락 너머 빨간 지붕의 작은 집 하나가 보인다. 마당에 설치된 해먹과 작은 텃밭, 밤톨 머리의 사장님, 고양이, 알 수 없는 문자와 이국적인 종교벽화가 그려진 이곳은 짜이다방이다.
내부에는 ‘새하얀 불편함’이 없었다. 마치 움집에 들어온 것처럼 흙벽과 지붕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는 서까래, 사연 많아 보이는 가구들로 이루어진 공간의 꾸밈없는 모습에, 낯선 곳임에도 아늑함이 절로 느껴졌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이런 것일까? 깔끔하지는 않지만 내부 곳곳에 배치된 목제 가구와 기하학 패턴의 천, 유물로 발굴될 거 같은 악세사리들 속에서 다시 한번 이 공간을 가꾼 사장님이 만든 인도 짜이는 어떤 맛일지 기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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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주 메뉴는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식 밀크티 ‘짜이’이다. 첫 방문했을 때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급하게 짜이만 테이크아웃 했는데, 나른한 가게 분위기와 사장님의 나긋한 응대에 나까지 절로 차분해졌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리 급하셔서 앉아 있지도 못하고 가시냐고’ 웃으며 나를 나무라시는 사장님과 달콤 쌉싸름한 짜이가 있는 짜이다방은 그렇게 내 기억에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더운 날씨 탓에 기본 짜이보다 500원 더 비싼 냉 짜이를 주문했다. 가게 곳곳에는 느림의 미학에 대해 알려주는 문구가 많다. 앞선 손님이 텃밭 에이드를 주문하자, 사장님은 그대로 가위를 들고 나가 가게 앞 텃밭에서 바로 허브를 따오신다. 다른 가게 같았으면 미리 수확하고 세척해서 냉장고에 넣어둔 것을 쓰겠지만 손님에게 ‘갓 따온 허브’의 신선함을 전달하려는 그녀의 철학과 고집이 느껴졌다. 테이크 아웃 전문 커피가게처럼 음료가 빨리 나오지는 않지만, 가만히 서서 가게 내부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구경하다보면 보면 어느새 조용한 목소리가 나를 부르며 완성된 짜이를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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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를 받고 좌식 자리에 앉아 이국적인 패턴의 쿠션들에 몸을 뉘였다. 가사 없는 인도풍 음악을 들으며 찬찬히 사방을 둘러보면, 짜이를 끓이면서 나는 향신료 냄새 그리고 어디선가 향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실제 인도 찻집에 간다면 이런 향이 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울퉁불퉁한 황토벽 때문인지 희미한 흙냄새와 가게 곳곳에 있는 햇빛에 말린 천 냄새에 진정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관광지로서의 제주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제주에서의 휴가를 보내고 있음이 실감 났다.
자유로운 가게 분위기만큼 사장님도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영업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게 단점이지만, 비일상적인 시간대에도 짜이와 라씨를 마실 수 있어 별식을 즐기고 싶은 올빼미족에게는 장점으로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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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 INFO
짜이다방
위치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남로 239
운영시간 수-일 11:00 ~ 21:00 (매주 월화 휴무)
(그래도 가장 먼저 사장님의 인스타를 확인해 당일 영업중인지 확인해보기)
인스타그램 @khunshikkhunshikkhunshik
관람 TIP 주차가능, 반려동물 동반 가능(고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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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의 습한 냄새와 오래된 LP들의 커버에서 나는 고서(古書)의 냄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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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길을 걷다 ‘L.P 음악감상실’이라는 처음 보는 단어에 발걸음을 멈춘 곳. 클래식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입구와 ‘SINCE 1995’라는 문구의 LP 감상실 간판은 나를 이끌기엔 충분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웅장한 음악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나를 반겨준다. 그리고 '여기가 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이 공간의 냄새는 명확하진 않지만 지하의 습한 냄새와 오래된 LP들의 커버에서 나는 고서(古書)의 냄새, 그리고 클래식한 물품들이 주는 냄새인 것 같다.
참고로 안 좋은 냄새가 아니라 심신에 안정을 주는 냄새랄까? 나만의 아지트에 온듯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냄새, 아니 향기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이 공간을 생각하면 클래식한 향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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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LP 바는 많이 방문해 봤지만, 세라비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LP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갔던 곳은 레트로 풍만 모방한 흉내 내기였음을 알았다. 이곳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메뉴라 할 것도 없이 입구 옆 냉장고에서 마시고 싶은 맥주를 꺼내오면 사장님께서 컵과 작은 그릇에 담은 과자를 주신다. 평범한 맥주잔과 투박한 플라스틱 그릇이 오히려 좋다.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에서 사운드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데 가게 입구 간판에 적혀있던 ‘음악 감상실’이란 단어에 부합하고 그러한 면모를 갖춘 곳이라 느껴진다.
인당 두 곡의 신청곡도 신청할 수 있는데, 원하는 신청곡을 사장님에게 전달하면 돋보기를 꺼내 LP를 찾으시고 노래를 틀어주신다. 사장님께 어떻게 저 많은 LP 중 원하는 걸 딱 찾으시는지 여쭤봤더니 알파벳순으로 다 정리를 해두셨다고 한다.
LP를 찾아서 닦고 노래를 트는 사이에 사장님과 단골손님들께서 신청곡에 대한 히스토리를 말씀해 주시는데, 얼마나 음악에 대해 애착을 갖고 계시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LP를 듣다 보면 특유의 타닥타닥 거리는 잡음 같은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는 그 소리가 마치 모닥불 타는 소리로 들려 마치 불멍을 하는 듯 마음이 평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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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께서는 노래에 맞춰서 뒤편에 위치한 커다란스피커들을 요리조리 조절하시면서 만지신다. 신기하게도 사장님이 손을 대면 감탄이 나올 정도로 다른 스피커가 작동되며 사운드가 좋아짐을 바로 느낀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처음 본 단골손님들과 함께 앉아 거리낌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얘기를 하다 보니 단골손님처럼 이곳을 아지트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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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정말 멋진 공간이라 느껴서 이곳저곳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요즘은 이미지가 전부가 돼버린 게 아쉽다“라는 단골 아저씨의 혼잣말을 들었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득도를 한 것 마냥 사진을 내려두고 온전히 이 공간을 받아들이고 느끼기로 하였다.
생각만 해도 진하게 나는 클래식의 향기, 웅장한 LP 사운드, 가게 분위기 그리고 사장님과 단골손님들까지 어느 하나 짜놓지 않았지만 정말 모든 게 완벽한 공간 ‘세라비’.
맥주 한 잔이나 음악을 듣기 위해서 가 아니라 이 공간을 천천히 음미하며 얻게 되는 ‘시간’에 대한 기대가 나를 자주 방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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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 INFO
세라비
위치 부산 수영구 남천동로108번길 31 지하1층
운영시간 오후 7시 ~ 오전 2시
전화번호 051-623-9377
관람 TIP
세라비는 프랑스어로 “그게 인생이야”라는 뜻
‘SoundHound’라는 음악 인식 검색 앱을 깔고 가면 유용함
맥주는 냉장고에서 셀프로 가져가고 나중에 일괄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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